서울을 납치해 왔다 완두콩만한 포고의 집으로 방법을 잘 모르면 극악무도해진다 11월의 포고처럼 포고는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잔인하게 서울을 고문했다 서울이 움직일 때마다 남아 있던 은행이 굴러가고 서울, 포고의 손아귀에서 힘없이 늘어진 지 오래 거품기로 휘젓다 만 생크림 전구처럼 깨져 버린 자두 터지기 직전의 물집 걸레로 닦이는 순간의 곰팡이 그런 것들과 ...
해피 뉴 이어. 어떠한 죄목도 없는 눈이 휘청이며 내려온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품속을 파고들었다. 자정이 넘은 스키장은 어두컴컴하다. 하루종일 귀를 간지럽혔던 캐롤도 나오지 않는다. 주인을 잃은 발자국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미지가 있다. 스키장 내의 라멘 가게 문을 잠구고 내려가는 미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이 푹푹 ...
부적격자가 등장했다 잘 익은 사과와 바게트 같은 과오 한꾸러미 들고 방금 내렸습니다 순화하자면 잘못이나 허물 부적격자, (그래 나 말이야) 거짓말을 들킨 여덟의 표정을 하고 Hell 또는 heaven인 이곳을 둘러본다 Where are you from? 부적격자는 입을 상실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븐 속 식빵 먹음직스럽게 부풀어오르고 굉음과 함께 사과와...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이사토 나가코. 한국에서는 어머니의 성을 따 김유라, 라고 불립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게 되었어요. 펜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지금 주부 국제공항 근처의 숙소에 있어요. 비행기가 도착하고 떠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와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가는 한국입니다. 당신이 멍하니 바라보던 꺼진 티브이나, 하루에 열 ...
(L - 1004, final test) 거대한 피부 위에 드러누웠다 드르륵, 하고 기억을 하나씩 빼내는 소리와 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알파벳과 네 개의 숫자가 기력을 다한 과일처럼 신체 바깥으로 다이빙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녹화가 시작되고, 커튼처럼 펼쳐진 빛은 프리즘으로 감겨 있다 아름답다고 생각했지 그건 자살으로 치환되는 걸 알면서도 러브 ...
북극곰 무니네 마을에 일 년에 한 번 오는 손님이 찾아왔어요. 그 손님은 수면에 거꾸로 매달린 얼음성 같은 빙산을 녹이고, 바늘 같은 햇빛을 하늘에서 골고루 뿌려요. 무니네 가족은 그 손님이 올 때마다 추운 곳으로, 털이 하얘질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무니네 가족은 그 손님을 반길 수 없어요. 아무리 굴러도 무너지지 않았던 시원한 집을 녹여 버리...
고소한 냄새가 났다. 하얀 국물에 달걀이 바다에 띄워진 그물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콩자반을 꺼내느라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열매 같은 헤어롤이 흔들렸다. 국물에 동동 떠 있는 콩나물 대가리를 보다가 생각이 번뜩였다. “소라랑 둘이서만 목욕탕에 가야겠어.” 엄마는 나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부엌과 큰방을 오가는 ...
먹음직스러운 시간이 왔다 팔에 차고 있던 1과 귀에 달고 있던 9를 벗어던졌다 한 해가 끝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성인이 되기로 했다 튀김가루 같은 먼지가 소복이 쌓인 다리미 칼을 쥐듯이 잡고 구겨진 역사를 폈다 사랑스러운 2와 0을 쟁취해야 한다 가지고 있던 1과 9를 구부려 가위를 만들었다 금박이 칠해진 탐스런 접시 위에 놓인 귤 알맹이 한 알을 보며 가위질...
땀이 목선을 타고 구슬처럼 굴러갔다. 섬짓한 기분이 들어 어깨가 떨렸다. 역 근처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서 잠시 태양을 바라봤다. 인중에 고여 있던 땀이 입꼬리를 타고 입 안으로 들어갔다. 굽어 있던 어깨가 저려 의식적으로 바르게 섰다. 어깨의 끝을 네모낳게 접는다는 생각을 하고, 발끝은 둥글게 오린다는 생각을 해. 메도가 했던 말. 방치된 젤리처...
해왕성에 띄울 집을 구상했다 아침마다 마쉬멜로가 섞인 시리얼에 우유가 또다른 행성으로 낙하하는 상상도 함께 그곳에서 지구인 A는 기체가 되어 있다 끈적하고 하얀 비가 내리는 행성을 무례하게 씹어버리는 상상도 했지만 해왕성에 띄울 집을 구상했다 지구인 A는 팔뚝을 꼬집었다 젤라틴처럼 물컹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이다 갈색을 띤 채 기절한 식물이 냉장고 위에 있고 ...
창문이 없는 곳에서도 새들은 죽었다 우리는 담요가 걸쳐진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벽을 바라봤다 옷장보다 큰 앰프 위에 초콜릿을 올려 놨다 벨기에에서는 초콜렛이 나무에서 열린다 진짜? 그럼 진짜지 여름이면 모두 녹아 버리는 나무를 상상한다 새가 부딪힌 지점을 바라보며 진짠지 아닌지 걱정을 한다 말린 체리가 놓여 있었다 새가 떨어진 곳에? 아니 새가 ...
냄비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누룽지였다. 누룽지의 딱딱한 겉을 따라 피어 있던 곰팡이가 냄비를 흔들 때마다 옆으로 굴러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결국 악을 질렀다. 옷장 안에 숨어 있던 미해가 덩달아 장롱 벽을 두드렸다. 뭣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입을 씨근덕거리는 와중에도 냄비 안에 물을 담았다. 수압을 높여도 누룽지는 움직이질 않았다. 한 두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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