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안 울다 최근들어 세 번 울었다. 한 번은 학원에서, 한 번은 지하철 안에서, 한 번은 집에서. 모두 나에게 실망해서 울었다. 서운함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괜히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것도, 괜히 외로운 마음이 드는 것도,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게 서운함을 쌓았고 방향을 돌렸다. 작은 마음들이 모이면 힘이 커진다. 가끔은 내가 그 힘을 제어하지 못...
여름이다. 창문으로 햇빛이 쨍쨍하게 들어왔다. 손에 난 상처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를 냈다. 날은 뜨거운데 상처는 퍼렇게 식어 있다. 그는 솜이불 위에 드러누워 일력을 바라보았다. 그가 며칠을 일어나지 못한 탓에 일력은 8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여름인데도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작업복을 입고 헬멧을 썼다. 움직일 때마다 옷속에서 더운 공기가 푹푹 올라...
나는 걷고 있다. 합정에서 망원 쪽으로 걷고 있다. 걸으며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건물들과 불빛을 본다. 나는 바람을 본다. 멀리서 오토바이에 시동거는 소리가 들린다. 빨간 오토바이는 혈액처럼 365일을 내게 속해 있었고 까만 오토바이는 365일을 보내다 너를 1톤 트럭에 내던졌다. 나는 나를 보고 너를 본다. 너는 언제나 떨어져 있었다. 내 오토바이는 늘 기...
온 세상이 늙었다. 갓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늙은 곳에서 나는 곧 고아가 될 것이다. 새하얀 타일을 바라보며 노인의 몸에 거품을 칠했다. 곰팡이 하나 끼지 않고 새하얀 욕실과 온몸 이곳저곳이 불어터진 노인은 어딘가 멀어 보이는 듯했다. 샤워 타올을 쓰면 피부가 벗겨질 것만 같았다. 사람의 온도에 녹을 것처럼 물컹한 피부를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현숙...
얼룩진 전등이 깜빡이는 체육관. 그는 둔탁한 펀치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것이든 맞으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전등이 터지는 소리,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같았다. 샌드백을 때릴 때 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때릴 때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권투는 죽을 생각으로 해야 된다는 스승의 목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이어서 스승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쓰러지는 ...
지난 19일 혼자 서울에 다녀 왔다. 아침 4시에 벌떡 일어나 쇠창살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새벽과 아침 사이를 보며 기지개를 켰다. 시원한 물을 들이켜 울렁거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얼굴을 씻었다. 5시 10분 출발이었다. 아슬하게 도착해 모르는 아저씨와 함께 달렸다. 아저씨는 같은 기차를 타는 것도 아닌데 같이 달렸다. 서울로 가는 기차는 길고 또 길었다....
어려운 게 참 많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 묵직한 눈꺼풀을 끌어다 올리는 것도 어렵고, 일어나자마자 물 한 컵을 마시는 것도 어렵고, 들어가지 않는 아침을 꾸역꾸역 위로 쑤셔넣는 게 어렵다. 아침을 어떻게 넘기면 점심이 온다. 그럭저럭한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에서 찾을 수 없는 영양가를 점심에서 찾고, 장마철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열두 시에 후두둑 떨어진 능소...
우리 집 바닥에서는 늘 알콜 향이 났다. 취하는 게 어떤 건지 몰랐지만 구멍 난 양말로 바닥에 엎질러진 술을 훔칠때만큼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코를 약간씩 찔러 오는 싸한 향을 들이키며 바닥에 쏟긴 술을 따라가 보니 그의 발이 나왔다. 갈라지고 부르튼 굳은 살 이 박힌 발바닥이 술에 젖어 축축했다. 코끼리 발 같은 그의 발을 조심스레 양말로 닦아냈다. ...
노란 빛으로 불규칙하게 번쩍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미로 같은 동네를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따뜻한 캔커피를 따지도 않은 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인터뷰 거부에 폭언까지 들어 밀려오는 눈물을 눌러 삼키던 내게 강선배가 쥐여준 것이다. 안전벨트를 풀어 유리창을 내렸다. 알콜마냥 싸하게 들어오던 매캐한 연기에 스며든 진눈깨비가 손등에...
요즘은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이런 질문을 할 만한 나이가 됐다고 생각해서인지, 마음이 컸다고 생각해서인지 문득 아빠는 새엄마가 정말 좋아서 같이 사는 거냐고 물었다. 아빠는 한숨을 푹 쉬고는 그닥 안 좋아한다고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도 살아야 하는 때가 있다고 그러셨다.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한다고 하는 걸까....
"못 보던 아가 왔네. 뉘 집 딸래미여?" 반쯤 무너져내린 담벼락에 쪼그려 앉은 할머니가 쏟아지는 여름 햇살에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녀가 터덜터덜 달리던 자전거에서 내려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전득서 이장님 손녀예요." 할머니가 눈가 주름을 잔뜩 편 채 끝이 닳은 지팡이로 그녀를 가리켰다. 전이장한테 손녀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
며칠 전 2018년 다이어리를 샀다. 4월 끝자락에 다이어리가 무슨 말인가 싶지만 그냥 사 봤다. 기록하는 데 순서 없고, 날 보내는 데 순서 없고, 떠오르는 데 순서 없으니까. 몇 년 전만 해도 꾸미는 데 중점을 뒀는데 이번에는 열심히 기록하려 애쓰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되씹고 뱉어내는 것. 그림이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고,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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